껍데기를 거부하고 알맹이를 노래한 시인, 신동엽
전시운영부 장순강 선임연구원
시대를 정직하게 마주한 '흙가슴'의 시인
매년 봄바람이 불어오고 대지에 생명력이 움틀 때면, 우리는 유독 한 시인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1960년대 한국 참여문학의 거대한 봉우리이자, 우리 민족의 순수한 생명력을 '알맹이'와 '흙가슴'으로 노래했던 시인 신동엽이다. 그는 서른아홉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가 남긴 시의 울림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형형한 빛을 발하며 우리 시대의 허위와 가식을 꾸짖고 있다.(사진: 신동엽 시인)
신동엽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금강의 젖줄을 타고 자란 그는 민중의 삶 속에 내재된 강인한 생명력과 역사의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독재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는 결코 펜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통의 현장이야말로 시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임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신동엽 시인
‘껍데기’를 걷어내고 ‘알맹이’를 찾아서
신동엽 문학의 정수는 단연 1964년에 발표된 「껍데기는 가라」에 응축되어 있다. 이 시에서 그는 ‘껍데기’와 ‘쇠붙이’로 대변되는 모든 가식, 외세, 그리고 무력의 시대를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4·19 혁명의 순수함과 동학 농민 운동의 저항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알맹이’만이 이 땅에 남기를 갈망했다.
그의 시어는 화려한 수식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할 정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단단한 바위처럼 묵직하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는 외침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치유하고 민족 본연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간절한 기도이자 선언이었다.

<껍데기는 가라> 초고(이미지 제공: 신동엽문학관)
민중의 역사를 대서사시로 승화시키다
신동엽 문학의 또 다른 정점은 장편 서사시 「금강」(1967)이다. 총 4,800여 행에 달하는 이 거대한 서사는 동학 농민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선포했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박제된 기록으로 보지 않았다. 금강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민중의 도도한 흐름을 포착해 낸 것이다.
그는 시를 통해 ‘중립(中立)’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방관자적인 태도가 아니라, 좌우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인간의 존엄과 민족의 화합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키겠다는 시인의 굳건한 의지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오늘날 극단적인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고결한 성품과 미완의 불꽃
시인으로서의 신동엽은 치열한 투사였지만, 인간으로서의 신동엽은 누구보다 다정하고 고결한 성품을 지닌 교육자였다. 명성여중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그는 제자들에게 늘 단정한 옷차림과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가난과 투병이라는 개인적인 고난 앞에서도 그는 결코 비굴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고통을 시적 자양분으로 삼아 더욱 맑은 영혼의 시를 써 내려갔다.
그의 이른 죽음은 한국 문학계의 큰 손실이었으나, 그의 정신은 아내 인병선 여사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신동엽 문학상>과 ‘신동엽 문학관’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일구어 놓은 시의 밭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알맹이들이 자라나고 있다.

신동엽 문학관(이미지 제공: 신동엽 문학관)
오늘, 우리가 다시 신동엽을 읽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지금 수많은 ‘껍데기’가 판을 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짜 뉴스와 자극적인 정보, 그리고 본질보다 겉모습에 치중하는 풍조 속에서 신동엽의 목소리는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그가 꿈꿨던 "향그러운 흙가슴"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이다.
이달의 문학인으로 신동엽을 선정하며,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권한다. 내 삶 속에 남아 있는 껍데기는 무엇이며, 내가 지켜내야 할 알맹이는 무엇인가. 시인의 단호한 명령을 따라 우리 안의 ‘쇠붙이’들을 걷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눈부신 ‘알맹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