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저자) 朴英熙 (발행처) 民衆書院 (발행연도) 1931년(昭和 6年)
재판.
[목차]
朴英熙, 「序」
小說篇
산양개/戰鬪/地獄巡禮
著者, 「머리말」
評論篇
鬪爭期에 잇는 文藝批評家의 態度/新傾向派 文學과 無産派의 文學/文藝運動의 方向轉換/
無産藝術運動의 集團的 意義
[내용]
단편소설 3편과 문학평론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냥개」는 인색한 부자가 호신용으로 산 사냥개에게 도리어 공격을 당해 죽는다는 내용이고, 「전투」는 가난한 소년이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연대하여 부유한 이들에 맞선다는 내용이며, 「지옥순례」는 궁핍한 인물이 극도의 기아를 면하기 위해 만두를 먹고는 만두 장수 소년을 살해하여 감옥에 간다는 내용이다. 한편 평론편은 내용ㆍ형식 논쟁에서 내용 우위를 주장한 평론과 프로문예운동의 목적의식적 방향 전환을 주장한 평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1930년 민중서원에서 초판 발행된 박영희의 작품집이다. 1931년 같은 출판사에서 재판 발행되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재판본이다. 초판본과 재판본은 내용ㆍ형태 등에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겉표지는 흰색 바탕으로 되어 있다. 앞표지에는 저자명ㆍ저서명ㆍ출판사명이 세로로 인쇄되어 있다. 소설편과 평론편 두 부분으로 나누어 편집되어 있고, 각 편 첫머리에 목차가 배치되어 있다. 「서」는 속표지 다음에, 「머리말」은 평론편 목차 다음에 편차되어 있다. 소설과 평론을 함께 묶은 저서는 드물다. 「머리말」에서 박영희는 평론집을 “별(別)로 정돈된 형식 밑에서 세상에 내놓으려” 하였으나 “출판자(出版者)의 소청(所請)으로 다만 수편(數編)의 평론을 첨가”했다며 소설에 평론을 합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소설ㆍ평론집》은 박영희가 낭만주의문학에서 계급주의문학으로 전환한 이후인 1925년 무렵부터 카프(KAPF)의 이론적 주도권을 쥐는 1927년 무렵까지 발표한 소설, 평론을 묶은 책이다. 박영희는 「서」에서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신경향파적 경향 작품, 프롤레타리아예술운동 초기적 작품”일 뿐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적 문예품”은 아니라고 자평하였다. 실제로 이 소설들은 신경향파소설의 문제점인 관념성의 과다와 서사성의 결핍, 극단적인 서사 구조 등이 드러난다. 즉, 「전투」는 계급사회의 모순과 투쟁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를 서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술자의 선동적 연설을 통해 제시하고 있고, 「사냥개」는 부르주아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과 해방을 사냥개라는 상징적 장치를 통해서만 표현하고 있으며, 「지옥순례」는 빈궁의 문제성을 기아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정신 착란과 살인이라는 극단적 행위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한편 「투쟁기에 있는 문예비평가의 태도」는 김기진과의 내용ㆍ형식 논쟁 과정에서 발표한 것으로, 자신의 소설에 대한 김기진의 비판에 맞서서 계급적 비평 관점의 필요성과 소설의 구성적 완성도보다 투쟁적 기능의 발휘가 시급함을 주장한 평론이다. 이 평론을 통해 박영희는 카프 내의 이론적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리고 「신경향파 문학과 무산파의 문학」, 「무산예술운동의 집단적 의의」, 「문예운동의 방향 전환」은 프로문예운동이 자연생장성에서 목적의식성으로,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함을 역설한 평론이다. 《소설ㆍ평론집》은 1920년대 중후반 프로문학의 주요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작가소개]
박영희(朴英熙, 1901~미상): 본명 박영희(朴英熙). 호 회월(懷月).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1901년 서울 출생.
공옥소학교를 거쳐 1916년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 김기진(金基鎭)과 교유했다. 1920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도일(渡日)하여 도쿄[東京]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했다. 1921년 귀선(歸鮮)한 후 시 동인지 《장미촌》을 창간하고 여기에 첫 시 「적(笛)의 비곡(悲曲)」, 「과거의 왕국」을 발표했다. 1922년 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 여기에 시 「미소의 허화시」 등 13편의 시를 발표했다. 1923년 김기진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사상과 계급주의 문학을 받아들였다. 파스큘라(PASKYULA)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첫 단편소설 「생」을 발표했다. 1924년 개벽사 기자가 되었고, 「자연주의에서 신이상주의에 기울어지려는 조선 문단의 최근 경향」 등 3편의 첫 평론을 《개벽》에 발표했다.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소설과 평론에 매진했다.
1925년 파스큘라와 염군사(焰群社)가 통합하여 카프(KAPF)가 결성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26년 카프 임시총회에서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7년 카프 내의 첫 논쟁이었던 내용ㆍ형식 논쟁을 김기진과 벌였고, 프로문예운동의 방향전환론을 제기했다. 카프 임시총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신간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29년 임화(林和), 김남천(金南天), 안막(安漠), 권환(權煥) 등 새로운 세력이 대두하여 이들과 문예운동관이 충돌하면서 카프에서 점차 심리적으로 멀어졌다. 1930년 카프 가입 후 쓴 소설과 평론을 묶은 《소설ㆍ평론집》을 출간했다. 1931년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카프 1차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으나, 불기소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 사건으로 사상적으로나 문예운동적으로 크게 동요했다. 중앙일보사에서 학예부장 및 사회부장으로 일했다.
1932년 카프 중앙위원을 사임하였으며, 1933년 카프에 탈퇴원을 제출했다. 1934년 카프의 정치주의를 비판하고 예술주의로 회귀할 것을 주장한 「최근 문예이론의 신전개와 그 경향」을 발표했다. 1934년 신건설 사건(카프 2차 검거 사건)으로 검거되어 재판을 받았다. 1935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고 출소했다. 1936년 대구복심법원 항소 공판에서 1심과 동일하게 판결함으로써 형이 확정되었으며, 1936년 수필 「독방」을 통해 감옥에서의 심경 변화를 피력했다. 1937년 1920년대 초에 쓴 시를 묶은 《회월시초》를 출간했다.(실제로는 1939년에 출간됨)
1938년 도쿄에서 열린 시국대응전국위원회에 참가하였으며,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경성지부 간사가 되었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 간사가 되었고 황군위문작가단에 소속되어 중일전쟁을 참전한 일본군을 위문했다. 수필집 《전선기행》을 출간했다. 요시무라 고도(芳村香道)로 창씨개명 하였다.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1년 조선문인협회 간사장,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총무국장으로 활동했다. 1945년 8ㆍ15 해방 이후 서울대에서 잠시 강의했다.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되자 강원도로 피신했다. 1947년 《문학의 이론과 실제》를 출간했다. 1949년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되자 카프 경력이 문제 될 것을 우려하여 이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1950년 6ㆍ25 한국전쟁 발발 후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이후의 소식은 알 수 없다.
[참고자료]
강진호 외, 《한국 근대문학 해제집Ⅰ-단행본》, 국립중앙도서관, 2015.
김영민, 《한국근대문학비평사》, 소명출판, 1999.
김윤식, 《박영희 연구》, 열음사, 1989.
김윤식,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문학과지성사, 2024.
김재용 외, 《한국근대민족문학사》, 한길사, 1993.
손해일, 《박영희 문학 연구》, 시문학사, 1994.
조남현, 《한국 현대소설사1-1890~1930》, 문학과지성사, 2012.
[해제자]
박정선(국립창원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