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저자) 朴勝極 (발행처) 金星書院 (발행연도) 1938년(昭和 13年)
초판.
[목차]
孤獨/癩患者/泉谷訪問記/生死/거지/酌婦/饑狗/欺瞞/路上愁語/惡夢/感傷/烈女/山村의 一夜/寶石/誠意/一錢/우슨 사람/虛荒/集配人의 死/老配達夫/生命保險/설/望月/旅行하고 싶은 마음/雉岳紀行/「時代와 文學」에 對하여/꾀꼬리는 울건 말건/梨專生의 自殺/靑春이여!/과세 잘했느냐?/不安記/蘇聯 反幹部派의 處斷/그 時節의 斷髮娘/歸鄕/옛 벗에게/培材와 朝鮮과 나/夜行車의 風景ㆍ其他/永川雜記/原稿料와 墓標/불타는 不滿/湖南의 風景/悲壯의 春節/作家時間表/三防瀑布行/社會ㆍ人生ㆍ自然/娑婆雜記
[내용]
다여집에 수록된 수필들은 박승극의 개인적 신상에 관련된 것들과 세태 풍속에 관련된 것들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는 사회운동 및 문학운동의 패배와 불우한 생활로 인해 고통을 겪던 박승극의 내면이 드러나 있고, 후자에는 물신주의와 배금주의 풍조에 물든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표현되어 있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1938년 금성서원에서 발행된 박승극의 수필집이다. 겉표지는 흰색 바탕으로 되어 있다. 앞표지에는 저서명과 저자명이 검은색 붓글씨로 세로로 쓰여 있고, 하부 오른쪽에는 연두색의 완두(豌豆)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뒤표지까지 이어져 있다. 장정은 아동문학가, 소설가이자 잡지 편집자, 삽화가로도 활동했던 이주홍(李周洪)이 맡았다. 일러두기에는 이 수필집이 “다여적(多餘的) 생활의 소산이라고 할 ‘인생’에 대한 것”을 모은 “수상·기행집”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수록된 수필들은 특이하게도 집필 및 발표 시기의 역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1938년작 25편, 1937년작 5편, 1936년작 4편, 1935년작 6편, 1934년작 3편, 1933년작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여집》은 박승극이 1933년 3월부터 1938년 5월까지 쓴 수필을 모은 수필집이다. 박승극은 1920년대 말부터 수원을 거점으로 다양한 사회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고, 카프(KAPF) 수원지부를 설립하여 수원 지역의 프로문예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런 활동 때문에 20여 차례의 검거를 당하였다. 그는 1931년 수진농민조합 사건으로 인한 수감생활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출소 후에는 모든 운동을 완전히 포기하였다. 그리고 그로 인한 패배감과 부채 의식, 어린 아들의 죽음, 생활고, 고향 생활의 고독이 중첩된 시련을 겪었다. 그의 수필에서 개인적 신상에 관련된 부분에는 고독, 절망, 허무, 우울, 비애 등 어두운 감정들이 짙게 드러나는데, 그 원인은 이 같은 개인적 불행과 관련되어 있다. 한편 그는 고향에 머물거나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과 세태 풍조를 관찰하고 묘사하였다. 그의 시각에 포착된 풍경은 물신주의와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는 부도덕하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그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에게는 연민을, 어리석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에게는 냉소를 표현하였다. 이 같은 세태 풍속에 관한 서술이 《다여집》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여집》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비판적 시선으로 포착하여 예리하게 그려낸 언어적 풍속화이다.
[작가소개]
박승극(朴勝極, 1909~미상): 소설가, 문학평론가, 수필가. 1909년 경기도 수원(현 화성 지역) 출생.
고향의 보신강습소를 거쳐 1924년 상경하여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재학 중 선배인 박팔양(朴八陽)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 1928년 도일(渡日)하여 도쿄[東京]의 니혼대학[日本大學] 정경과에 입학했으나 이내 귀향했다. 고향에서 빈농 자녀들을 가르쳤다. 《조선일보》 수원지국을 운영하며 수원기자동맹에 참여했고, 신간회 수원지회에서도 활동하였다. 1929년 카프 수원지부 결성을 주도했고 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까지 수원 지역의 각종 사회운동에 폭넓게 관여했으므로 20여 차례 검거 당하기도 하였다. 1929년 첫 단편소설 「농민」을 발표하였다. 1931년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카프 1차 검거 사건)으로 검거되어 조사받았다. 수진농민조합 사건으로 검거되어 재판을 받았고, 1933년에 무죄 석방되었다. 1932년 첫 평론 「프로문학운동에 대한 감상」을 발표했다. 1935년 「조선 문단의 재건설」을 발표하여 카프 해소를 주장하였다. 1937년 평론집 《시대와 문학》을 출간하려 했으나 검열로 무산되었다. 1938년 수필집 《다여집》을 출간했다. 1945년 8ㆍ15 해방 이후 수원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상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민주주의민족전선 경기도지부 사무차장 및 선전부장, 남조선노동당 수원군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여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49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문화선전성 문학예술부장, 문화선전성 기관지 《선전자》 편집인을 역임하였다. 휴전 후에는 소설 창작에 매진했다. 1970년 조선작가동맹 개성시 지부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후의 소식은 전하지 않는다.
[참고자료]
권영민,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 문예출판사, 1998.
박승극 문학전집 편집위원회 엮음, 《박승극 문학전집2-수필》, 학민사, 2011.
오양호, 《한국 근대수필의 행방》, 소명출판, 2020.
성주현, 「일제강점기 박승극의 활동과 재인식」, 《숭실사학》 22, 숭실사학회, 2009, 119-153쪽.
[해제자]
박정선(국립창원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