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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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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松童話集(해송동화집)

  • 자료번호

    문56384
  • 저자명

    마해송(馬海松, 1905~1966) 저
  • 발행년도

    1940년
  • 크기(cm)

    세로 19.0cm, 가로 12.8cm
  • 개요

    《해송동화집》은 마해송의 첫 동화집이자 한국 최초의 창작 동화집이다. 초판본은 1934년 도쿄의 동성사同聲社에서 발행되었고,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1940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된 재판본이다. 《해송동화집》에는 한국 최초의 창작 동화로 알려진 「바위나리와 애기별」을 포함한 11편의 동화가 수록되어 있으며, 권말에는 색동회원인 손진태·고한승·진장섭의 서문과 저자의 후기가 첨부되어 있다. 《해송동화집》은 초판본의 현전 실물이 4종에 불과한 희귀 자료이다.
  • 키워드

    마해송, 해송동화집, 창작 동화, 바위나리와 애기별, 색동회

소개

[기본정보]

(저자) 馬海松 (발행처) 漢城圖書株式會社 (발행연도) 1940년(昭和 15年)

재판. 삽화-이병현(李秉炫), 김정환(金貞桓).

 

[목차]

어머님의선물/福男이와네동무/다시건저서/장님과코길이/둑겁이의배/바위나리와애기별/독갑이/ 少年特使/호랑이/톡기와원숭이/호랑이고ᄭᅡᆷ

孫晋泰, 「序」

高漢承, 「序」

秦長燮, 「序」

 

[내용]

이 책은 한국 최초의 창작 동화집으로 알려진 마해송의 《해송동화집》 재판본으로서 1940년에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되었다. 11편의 동화와 함께 권말에 색동회원인 손진태, 고한승, 진장섭의 서문과 저자의 후기가 수록되었다. 삽화는 이병현과 김정환이 담당했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마해송의 《해송동화집》 초판은 1934년에 도쿄의 동성사(同聲社)에서 발행되었고, 재판본은 1940년에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되었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재판본에 해당한다.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은 마지막 수록 동화인 「호랑이 곶감」의 일부와 203쪽 이후의 저자 후기가 훼손되어 있다. 《해송동화집》 초판본의 실물은 현재까지 4종이 확인되었는데, 아동문학 연구자 이재철 소장본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소장본, 미국 워싱턴대학교 소장본,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간사이관[關西館] 소장본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자료 상태가 가장 온전한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간사이관 소장본만 「홍길동」이 추가되어 12편의 동화를 수록하고 있고, 나머지 3종은 국립한국문학관 소장본처럼 「홍길동」이 빠진 11편의 동화만 수록되어 있다. 이 사실에 기초해 일본의 소장본을 《해송동화집》의 최초 판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송동화집》은 마해송의 첫 동화집이자 한국 최초의 창작 동화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여섯 번째 수록 동화인 「바위나리와 애기별」은 한국 최초의 창작 동화로서 1923년 잡지 《샛별》에 처음 발표된 작품이기도 하다. 「바위나리와 애기별」은 바위나리와 아기별의 우정과 사랑을 통해 어린이의 순수성과 그 영원성을 화두로 제시하는 동화다. 이러한 정조와 주제 의식이 《해송동화집》 전반에 깔려 있다. 《해송동화집》 권말에 실린 서문에서 고한승이 마해송의 동화를 읽을 때마다 “돌아오지 못하는 옛날의 ‘마음의 고향’에 다시 간 듯”하다고 말한 까닭도 그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권말의 서문에서 손진태도 “군의 동화집은 우리 어린 사람들의 애중(愛重)한 동무가 되고 또 귀한 정신적 양도(糧度)가 될 것을 믿고 의심치 아니한다”고 확신했다. 진장섭의 서문에 의하면, 누구보다 동화 창작에 헌신한 마해송의 특별함에 주목한 자신과 마해송 간 주고받은 논의를 통해 《해송동화집》이 기획되었다고 한다.

 

[작가소개]

마해송(馬海松, 1905~1966): 아동문학가. 본관 목천(木川), 본명 마상규(馬湘圭), 아명 창록(昌祿), 아호 해송, 세례명 프란치스코. 경기도 개성 출신.

1915년 개성 제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불교 신자인 모친의 권유로 불교계 교육 기관인 개성학당에 입학하였다가 3ㆍ1운동 여파로 중퇴한 후, 1년제 개성공립간이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상경 후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나 동맹 휴학으로 중퇴한 이후,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였지만 역시 동맹 휴학으로 다시 중퇴했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学]에서 수학했다.

졸업 후 일본의 문예지 《문예춘추(文藝春秋)》의 편집장을 거쳐 기쿠치 간의 후원 아래 “모던 일본[モダン日本]” 잡지사 사장을 역임했다. 그 사이인 1922년에 공진항, 김영보, 고한승, 진장섭 등과 문학 클럽인 녹파회를 조직했고 1924년에는 색동회에 가입하는 한편, 방정환이 주관하던 아동잡지 《어린이》를 통해 아동문학 작품도 다수 발표했다. 1937년 무용가 박외선과 결혼하여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광복 후 귀국하여 송도학술연구회 위원장(1945), 국방부 한국문화연구소장(1950)을 역임했다. 한국전쟁기에는 국방부 정훈국 편집실 고문, 승리일보사 고문 등의 자격으로 평안북도 영변까지 종군했다. 그 후 한국문학가협회 대표 위원(1955), 대한소년단 이사(1959) 등을 역임했다. 1957년에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제정되고, 1958년 어린이날에 한국 최초의 어린이 헌장비가 대구 달성공원에 건립되는 데도 힘썼다. 1959년 제6회 자유문학상, 1964년 제1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1956년 무렵에 천주교에 귀의한 마해송은 1966년 11월 6일 서울에서 만 61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아동문학가로서 마해송을 기념하기 위해 1967년 1월에 해송동화상이 제정되었지만, 그다음 해 제2회로 중단되었다. 저서로는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집인 《해송동화집》(1934)을 비롯하여 《토끼와 원숭이》(1947), 《떡배 단배》(1953), 《모래알 고금》(1958), 《멍멍 나그네》(1961) 등의 동화집, 《편편상(片片想)》ㆍ《속 편편상》ㆍ《전진(戰塵)과 인생》ㆍ《요설록(饒舌錄)》(1962) 등의 수필집이 있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영훈, 「마해송 동화 연구」, 중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2008.

정선희, 「한국 아동문학 형성기의 설화적 상상력 연구: 색동회원 손진태, 고한승, 마해송의 동화를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2025.

염희경, 「《해송동화집》의 이본과 누락된 「홍길동」의 의미」, 《동북아 문화연구》 제38집,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4, 179–195쪽.

 

[해제자]

유석환(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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