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학가·영화인·언론인 심훈(沈熏)
손대환(청주대 학술연구교수)
근대 문학가이자 영화인, 연극인, 언론인 심훈(沈熏, 1901~1936)의 문학 세계를 규명하는 핵심 열쇠는 그의 ‘저항적 민족주의’, ‘문화적 사회주의 경향성’, 그리고 ‘농촌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당시대의 흐름에 따른 복합적인 사상관에 있다.
3·1 독립만세운동의 학생 주동자
심훈(본명 심대섭, 沈大燮)은 아버지 심상정(沈相珽)과 어머니 해평 윤씨(海平 尹氏) 사이의 3남 1녀 중 막내(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5년 당대 최고의 엘리트 산실이었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발발하자 심훈은 파고다공원과 남대문역 앞 시위를 주도하는 학생 주동자로 전면에 나선다. 이로 인해 심훈은 옥고를 치르게 되었고, 학교 측으로부터 강제 퇴학(실증적으로는 자퇴 처리 후 제명) 처분을 받으며 그의 국내 학업은 중단된다. 이 시기 심훈의 사상은 관념적 애국심을 넘어 신체적 고통을 수반한‘행동주의적 민족주의'로 내면화되었다.

고교 시절 심훈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심훈시가집》 「그 날이 오면」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중국 지강대학(之江大學) 극문학(劇文學)의 전수
출옥 후 상해와 남경을 거쳐 항저우(杭州)에 정착한 심훈은 1921년 지강대학(之江大學)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당대 유행하던 근대 극문학(劇文學)과 영화 예술의 가능성에 눈을 떴으며, 안석주 등 유학생 동지들과 교류하며 훗날‘극문회' 조직의 발판을 마련했다. 지강대학에서의 학업은‘문학인 심훈'을 넘어‘영화인·연극인 심훈'으로 도약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상적·예술적 자양분이 되었다.
심훈의 당진(唐津)의 인연_ 실천적 농촌 계몽주의의 산실
1932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당진에 정착한 심훈은 1934년 송악면 부곡리에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건축한 가옥을 짓고, 이를 ‘붓으로 밭을 가는 집’이라는 뜻의 필경사(筆耕社)라 명명했다. 필경사라는 이름 자체에 드러나듯, 그는 관념에 갇힌 먹물 지식인의 태도를 버리고 낮에는 농민들과 함께 흙을 만지며 땀 흘려 일하고, 밤에는 남포등 아래에서 집필에 몰두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행동주의적 삶을 실천했다. 이 공간은 심훈 농촌 계몽주의 사상의 물리적 거점이자 그의 후기 문학이 탄생한 요람이 되었다.
당진에서의 사상적 결실과 문학적 성취_ 농촌계몽 소설의 정점, 『상록수(常綠樹)』 집필 (1935), 당대 전개되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의 영향
심훈을 한국 문학사에 불멸의 위치에 올려놓은 장편소설 『상록수』(1935)는 바로 당진 필경사에서 집필되었다. 그는 당진 농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야학을 장려하고, 농민 스스로가 글을 깨치고 무지를 벗어나야만 식민지 조선이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고 믿었다. 청년기에 가졌던 뜨거운‘저항적 민족주의'가 당진이라는 공간을 만나‘농민의 주체성 확립을 통한 실력 양성 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상록수> 친필 원고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영화 및 희곡·시나리오 분야_ '영화인 심훈'으로의 지평 확장
영화 「먼동이 틀 때」(1927)는 심훈이 직접 원작을 쓰고 각색, 감독을 맡아 단성사에서 개봉했던 무성영화이다. (당시 원제목은 「어둠에서 어둠으로」였으나 일제의 검열로 제목이 수정됨) 또한 시나리오 「불가사리」(1920년대 말)는 한국 영화사 최초의 괴수 영화 시나리오로 평가받는 대본으로, 민중의 원한이 괴물이 되어 압제자를 심판한다는 저항적 알레고리가 담겨 있다. 특히 영화평론 및 논설에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 시절 집필한 수십 편의 영화평으로, 근대 조선 영화가 나아가야 할 민족 예술적 방향성과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청년기 심훈 (심훈기념관 사진 제공)

영화 「먼동이 틀 때」 시나리오 원고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참고자료]
김종욱·박정희 편, 『심훈 전집』(전 8권), 서울: 글누림, 2016.
민족문제연구소 편, 『친일인명사전』,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2009.
심재호 편, 「심훈 연보」, 『심훈 전집』, 서울: 탐구당, 1966.
한국영화사연구소 편, 『한국 무성영화 시나리오집』, 서울: 영화진흥위원회, 2005.
유병석, 「심훈 연구」, 『국어국문학』 제24호, 국어국문학회, 1961, 89-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