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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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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處不花閣集(무처불화각집)

  • 자료번호

    문3998
  • 저자명

    김기수(金綺秀, 1831~1894) 저
  • 발행년도

    1882년 이후 필사
  • 크기(cm)

    세로24.9cm, 가로15.6cm
  • 개요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무처불화각집(無處不花閣集)》은 창산 김기수가 1879년 6월 덕원부사로 부임한 뒤 1882년 10월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의 영접관을 맡기 전까지 지은 시문을 정리한 자선문집이다. 김기수가 제1차 수신사로 일본 사행을 다녀온 뒤의 대일 외교, 인적 교유, 문학 활동상이 담겨 있으며 그의 문집 가운데 유일하게 현전하기에 자료적 가치가 높다.
  • 키워드

    김기수, 수신사, 덕원부사, 자편수고본, 내수외양론

소개

[기본정보]

4침안 선장

필사본

발행지 미상 : 발행자 미상, 발행년 미상

不分卷1冊(목차 3장, 본문 41장) : 四周雙邊 半郭 18.9×12.7 cm, 有界 烏絲欄, 10行20字, 無魚尾

 

기타 주기사항

後識: 水仙旹習

 

[목차]

〈詩〉

走筆和品山丈復疊雪峯諸詩韻 5수/又和品山丈五絶十首 10수/又疊前韻十律呈品山丈 10수/遙別金景能信使之日本 5수/東閣後庭栽草花數種戱得五七兩絶 2수/賀李是庵回甲用束晢白華補亡詩韻起內外句幷襲用之 3수/和奧義制/曉枕愁雨/笠叟六十二歲生日/秋日訪康軾魯堂隅隱居歸得其詩又和之/和崔秉夏 4수/和奧義制/登衙西麓用菊花須揷滿頭歸韻賦之/長林寺與七柏笠叟共賦/和奧義制韻/又和奧義制韻/和金君昌鉉/和崔兢庵寄示均/和朴奎顯/和金昌鉉/答金錦湖/答朱權燮(讀向示嶺湖唱酬諸公詩均是絶世文字欽誦萬萬就中溪雲爲王者師歸隱故山而鶴農公泉臺一隔此生不可復見矣不禁掁觴偶得一律幷原軸玆敢塵覽)/淵齋回榜詩/(失題)

 

〈書〉

答朴生容訥/答崔生秉夏/龍津書院遺址碑陰記/龍淵和尙門稧帖序/答朴奎顯書/答奧義制書/長林遊記/答日本總領事書/又答/縣洞李氏兩世孝行錄序/釋王寺尋劍眞歇兩堂記/李用穆哀辭/與對馬舊島主/別安君周瑨佐幕嶠南序/代人自列疏/春城節義傳/象山康氏族譜序/一蕉二桐記/普賢寺記/辭大司成疏/辭刑曹參判疏/響山樓記/古東精舍記/祭從叔判官公墓文/藫庭遺藁跋/東閣散錄跋/水梧說

 

[내용]

《무처불화각집(無處不花閣集)》은 창산 김기수가 1879년 6월 덕원부사로 부임할 때부터 1882년 10월 임오군란으로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의 영접관을 맡기 전까지 지은 시문을 손수 산삭하여 편집한 자편 시문집으로 시 25제 57수, 문 27편이 수록되어 있다.

 

[자료의 특성 및 가치]

국립한국문학관 소장 《무처불화각집(無處不花閣集)》은 창산 김기수가 1879년 6월 덕원부사로 부임할 때부터 1882년 10월 임오군란으로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의 영접관을 맡기 전까지 지은 시 25제 57수, 문 27편을 수록한 소집(小集)으로 그의 문집 《창산집(倉山集)》 필사본 중 영본 1책이다. 김기수는 조선 개항 이후 첫 일본 사절단인 제1차 수신사의 정사(正使)로서 그가 남긴 《일동기유(日東記游)》를 통해 주로 연구되어 왔다. 국립한국문학관을 통해 공개된 《무처불화각집》은 그의 문집으로는 처음 알려진 현전 유일본이다.

책 서뇌(書腦)에 “창산자 스스로가 좋아한 것들(倉山子自好)”이라고 묵서하여 김기수가 직접 산정한 자선문집이라는 점을 명시하였으며 바로 이어서 “제29책(廿九)”임을 밝혀 그 이전 시기에 해당하는 자선문집 28책이 이미 있음을 표기하였다. 작품 수록 양상을 보면 한양 가회방의 북사(北社)와 간찰을 통해 교류하였던 자취는 거의 남기지 않고, 그가 있던 덕원 등지에서의 시문을 주로 남겼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창산집》에 대해 민규호(閔奎鎬), 김영수(金永壽), 서응순(徐應淳), 한장석(韓章錫)과 같이 구한말 북촌 노론을 대표하는 문장가들이 글을 남긴 바 있으며 신석우(申錫愚), 박규수(朴珪壽), 조면호(趙冕鎬), 김윤식(金允植) 등과도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점을 상고할 때 특기할 만한 지점이다.

조선 조정은 일본과의 조약 체결로 덕원부를 개항한 뒤 첫 부사로 김기수를 임명하였다. 이에 따라 김기수가 대일 외교를 담당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대마도 도주와 일본 총영사에게 편지를 발송하고 덕원항의 관리 오쿠 기세이(奧義制)와 시문을 주고받는 양상이 이 책에서 확인된다. 덕원의 문사 박규현(朴奎顯)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며 국력을 키워 외적을 막는 내수외양론을 주장하였음을 보여준다.

국내 인사와의 교유로는 윤종의(尹宗儀), 김낙현(金洛鉉), 김직연(金直淵), 김홍집(金弘集), 민영익(閔泳翊) 등이 언급되는데 김직연에게 써준 시는 이 소집에 실린 57수 중 25수에 달한다. 또한 백조부 김려의 「담정유고(藫庭遺藁) 발」에서 선대를 계승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홍대용의 증손 홍가유의 요청으로 써준 「향산루기(響山樓記)」에서는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홍덕보묘지명」을 애독한 점이 드러난다. 덕원 인근을 유람하면서 쓴 「장림유기(長林遊記)」에서는 박지원 《열하일기(熱河日記)》의 표현을 수용한 양상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소개]

김기수(金綺秀, 1831~1894): 자는 계지(季芝), 호는 창산(倉山), 본관은 연안(延安).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첫 일본 사행단인 수신사의 정사를 맡은 뒤, 1879~1881년 덕원부사를 역임하며 대일 외교에 종사하다가 1882년 10월 청나라 영접관, 1883년 의주부윤, 1888년 진하겸동지사은사 부사를 맡으며 대청 외교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담정그룹으로 알려진 백조부 담정(藫庭) 김려(金鑢)와 조부 서원(犀園) 김선(金䥧) 등의 뒤를 이어 한양 북부 삼청동 일대에서 세거하였으며 김선의 제자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에게 수학하며 북사에서 활동하였다. 일본 수신사 사행록 《일동기유(日東記游)》를 저술하고 김려ㆍ김선의 1801년 유배의 전말을 기록한 《사초(史草)》를 찬집하였으며 문집으로 《창산집(倉山集)》이 있는데 그중 현재 소집(小集) 《무처불화각집》만 확인된다.

 

[참고자료]

이우성, 《한국고전의 발견》, 한길사, 1995.

김영진, 「현존 김려ㆍ김선 형제 저작의 문헌학적 재검토」, 《민족문화연구》 98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23, 37-61쪽.

최민규, 「倉山 金綺秀 文學 硏究」,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25.

 

[해제자]

김영진(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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